나폴레옹이 남기고 간 일화

나폴레옹이 남기고 간 일화

 

1. 눈물 젖은 사과

프랑스 브리엔 유년사관학교 인근 사과 가게에는 휴식 시간마다 사과를 사 먹는 학생들로 붐볐다.
그러나 그 많은 학생들과 달리, 돈이 없어서 저만치 떨어진 곳에 혼자 서 있는 학생 한 명이 있었다.
"학생, 이리 와요. 사과 하나 줄 테니 와서 먹어요."
가게의 여주인은 가난한 그 학생의 사정을 알고, 만날 때마다 불러서 이렇게 사과 하나씩을 주었다.
그 뒤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사과가게 여주인은 그 사이에 허리가 구부러진 할머니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서 사과를 팔고 있었다.
어느 날, 장교복장을 한 사람이 그 사과 가게를 찾아 왔다.
"할머니, 사과 한 개만 주세요."
장교는 사과를 맛있게 먹으면서 말했다.
"할머니, 이 사과 맛이 참 좋습니다."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그 장교에게 앉으라고 의자를 권하였다.
"군인 양반, 지금의 황제이신 나폴레옹 황제께서도 소년 시절에 우리 가게에서 사과를 사서,

그렇게 맛있게 드셨지요. 벌써 30년이 지난 이야기지만..."
"제가 듣기로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나폴레옹 황제에게, 할머니께서 늘 사과를 그냥 주셔서 먹었다고 하던데요."
이 말을 들은 할머니는 펄쩍 뛰면서 말했다.
"아니오, 그건 군인 양반이 잘못 들은 거예요. 그때 그 학생은 반드시 돈을 꼭꼭 내고 사 먹었지요.
한 번도 그냥 얻어먹은 일은 절대로 없었어요."
할머니는 나폴레옹 황제가 소년시절에 겪은 어려웠던 일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싫은 듯 부인하였다.
그러자 장교는 다시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지금도 황제의 소년시절 얼굴을 기억하십니까?"
할머니는 고개를 옆으로 저으면서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사과를 통해 마음을 나누었던 추억을 더듬는 듯했다.
그러자 장교는 갑자기 먹던 사과를 의자에 놓고 일어나 할머니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으며 눈물을 흘렸다.
"할머니, 제가 바로 나폴레옹 황제입니다. 바로 30년 전에 돈이 없어 사과를 사 먹지 못할 때,
할머니께서 저에게 사과를 주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입니다. 그때의 사과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 그때 그 사과를 먹으면서, 언젠가는 할머니의 은혜를 꼭 갚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지요."
할머니 눈에서도 어느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폴레옹 황제는 금화가 가득 들어 있는 주머니를 할머니 손에 쥐여 주면서 말했다.
"할머니, 이것은 저의 얼굴이 새겨진 금화입니다.

이것을 쓰실 때마다 저를 생각해 주십시오. 정말 고마웠습니다."

 

2. 믿음의 댓가

한 남자가 작은마을 여관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계산하려고 주머니를 뒤졌는데 지갑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식당 주인에게 말했다.
"지갑을 놔두고 나왔습니다. 한 시간 안에 돈을 가져와 지불해도 될까요?"
식당 주인은 펄쩍 뛰며 식대 14 프랑을 당장 지불하지 않으면 신고하겠다고 손님을 윽박 지르고 있었다.
그 광경을 옆에서 보던 웨이터가 주인에게 말했다.
"지갑을 깜박하고 외출하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죠.
제가 대신 돈을 내겠습니다. 이분은 정직해보입니다."
얼마 후 남자가 여관식당에 돌아와 주인에게 말했다.
"이 여관을 얼마면 팔겠소?"
"3만 프랑은 되야하오."
그는 그 자리에서 3만 프랑을 내어주며 식당을 사겠다고 했다.
그는 여관을 산 서류를 받아서 웨이터에게 주었다.
"당신이 나를 믿어준 건 3만 프랑보다 더 값진 일이오."
그는 평복 차림으로 나왔던 나폴레옹이었다.

 

3.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나폴레옹이 31살 되던 해 제 2차 이태리 원정 때의 일이다.
험한 비탈길 그리고 눈과 얼음에 뒤덮힌 알프스의 위험은 인간의 용기와 체력을 시험하는 끈질긴 싸움이었다.

몇천만년 전의 눈과 얼음으로 덮힌 알프스산의 그랭생 베르나르 고개는 한번 미끌어지는 날이면 천길만길되는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곳이었다. 무서운 눈보라 속을 보병, 기병, 포병의 대부대가 줄을 이었다.
늙은 장교들은 떠날 때부터 한사코 반대했으나 강철같은 나폴레옹은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弱者의 소리는 없소. 내가 가는 길을 가로막을 알프스는 없다고 생각하오”

이는 ‘내가 하면 무엇이든 된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나폴레옹은 이러한 강한 의지와 자신에 넘친 말로 프랑스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었다. 
인류 역사상 BC218년경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이 코끼리부대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어 로마군의 배후를 쳐서

크게 이긴 이래 아무도 넘을 수 없었던 그랭생 베르나르 고개, 눈물과 피로 넘은 알프스산맥,

과연 그 산맥을 넘으니 당황한 오스트리아군은 용기있는 프랑스군에게 모두 항복하였고,
이탈리아 영토 거의 전역이 프랑스 차지로 되었다.

 

4. 40전 40숭위 탁월한 군사전략가

나폴레옹의 한 부관이 나폴레옹의 재능을 찬미하며 말했다.

"폐하께서는 항상 적은 병력으로 큰 적을 물리치셨지요"

그러자, 그는 알수없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닐세. 난 항상 많은 병력으로 작은 적을 물리쳤다네"

나폴레옹은 실제로 거의 평생동안 전 유럽을 상대로 전쟁을 했기에,

동맹군이 전무한 상황에서 항상 주변국보다 압도적인 수적열세에 있었다.

이것이 나폴레옹의 부관이 말한 부분이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전체 병력현황과 상관이 없이, 프랑스 군대의 우수한 기동력을 십분 활용하여

중요 전장에 전력을 집중시켜 적의 대군을 여러개의 소규모 부대로 쪼개어

각개격파 하는 식의 전술을 귀신같이 펼쳐냈다.

이러한 배경이 있었기에 그가 웃으며 대답할수 있었던 것이다.

군사사상 불후의 명언으로 꼽히는 "난 사람을 잃을 지언정 타이밍은 잃지 않는다." 는

나폴레옹의 말 역시 많은 것을 대변한다고 볼수 있겠다.

 

5. 나폴레옹의 인생관

“내 비장의 무기는 아직 손 안에 있다. 그것은 희망이다.”라고 말한 나폴레옹은

“남의 힘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의지할 것은 오직 나의 힘뿐이다”라고 말했다.

나폴레옹 전쟁으로 200만 명이 목숨을 잃어서 나폴레옹은 ‘코르시카의 악마’, ‘목숨의 낭비자’ 등의 악명이 붙었다.

주변에 그를 암살하려는 사람들도 있았다. 그가 자신의 힘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승리의 순간에 가장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말한 그는

“사람은 덕보다는 악으로 더 쉽게 지배된다”고 했다.

 

6. 직각삼각형 활용한 포사격

이탈리아를 정복한 나폴레옹이 다시 독일을 공격할 때였다.

독일과의 국경에서 나폴레옹 군대는 강을 만나게 되었다.

나폴레옹은 강 건너편에 있는 독일군 진지에 대포를 쏘라고 명령했으나

대부분의 포탄이 진지까지 가지도 못한 채 강에 떨어지고 ,

어떤 것은 진지를 지나쳐 멀리 날아가 버리는 것이었다.

화가 난 나폴레옹은 포병대장에게 소리 쳤다

"도대체 대포를 어떻게 쏘는 거야?"

포병대장은 강의 폭을 정확히 알 수 없어서 포탄이 날아갈 거리를 계산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나폴레옹은 강 건너편의 한 곳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쓰고 있던 모자를 앞으로 푹 내린 후, 뒤로 돌아서서 같은 자세로 앞을 바라보고는

큰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 강의 반대편을 가리키며,

"여기서부터 저 나무까지의 거리가 바로 강의 폭이야. 이 거리로 계산하여 대포를 쏴!"

나폴레옹의 지시대로 거리를 재서 대포를 쏘니 정확하게 적진에 떨어지게 되었고

나폴레옹은 또다시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나폴레옹은 어떻게 강의 폭을 알아냈을까?

그것은 직각삼각형의 합동조건 을 이용한 것이었다.

나폴레옹은 "수학의 발전은 국력에 비례한다."는 말을 남길 정도로 수학을 높이 평가했다.

나폴레옹이 수학의 중요성을 주장한 것은 전쟁과 대포, 대포와 탄도의 연구에 수학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7. 지휘관 자질

한 포병장교가 4년 동안 똑같은 계급장을 달고 있는 것에 불만이 생겼는데 나폴레옹이 군대점검을 위해 자기 요새를 찾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승진을 청원하려고 결심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나폴레옹이 요새에 도착하였는데…

장교는 쑥스러워 나폴레옹에게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떠나려 할 때

장 교 : "폐하, 폐하!"

나폴레옹 : "왜 그러는가?"

장 교 : "저는 14년 동안 복무했으나 4년 동안 대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나폴레옹 : "(수행원 소령의 계급장을 떼서 손수 달아주며) 소령!"

그리고 나폴레옹은 무심한 듯 말없이 다시 갈 길을 갔다고 한다.

 

한번은 숙영하는 야전 부대를 순시하던 중 총을 옆에 놓고 졸고 있는 초병을 보았는데

깨우는 대신 자기가 잠깐 그 자리를 맡아 보초를 섰다. 잠시 후 초병이 깨어났지만

그를 질책하는 대신 조용히 총을 돌려주고 돌아갔다고 한다.

즉 초병의 중요성은 졸병이 아니라 총사령관이라도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자리라는 걸 몸소 보여준 것이었다.

 

8. 영주의 효성에 감동한 나폴레옹

전 유럽을 석권하던 나폴레옹이 폴란드를 침략하던 때의 일이다.
거침없이 폴란드를 점령해 나가던 나폴레옹이 새로운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한 폴란드 영주가 나폴레옹을 초대해 저녁 만찬을 대접했다.
그런데 영주가 안내한 나폴레옹의 자리는 위에 상석이 두 자리가 더 있는 세 번째 자리였다.
불쾌한 나폴레옹의 표정에 함께 온 장군들이 항의하며 영주에게 물었다.
"우리 황제의 말 한마디면 이곳은 순식간에 쑥대밭이 될 수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황제에게 잘 보여야 하는 상황에서 상석을 저렇게 비워두다니, 후환이 두렵지 않으시오?"
그러자 영주는 주변 사람들과 나폴레옹을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저 두 자리는 곧 나오실 저희 부모님의 자리입니다. 두 분이 연로하셔서 거동이 조금 늦으십니다.
황제 폐하가 프랑스에서는 가장 높은 분이시겠지만,
이 집안에서는 저희 부모님이 가장 높은 분입니다. 그래서 두 분을 위해 상석을 비워두었습니다."
영주의 효성과 기개에 감탄한 나폴레옹도 마음에 진한 감동을 받았다.

 

9. 소원을 말해보게

러시아 원정시 아주 급박한 상황이 닥쳤다.

나폴레옹이 러시아와의 전투에서 크게 패해서 러시아 기병대의 추격을 받아

후퇴중 자국병사들에 뒤처져 구사일생으로 홀로 탈출한 일이 있었다.
그는 말도 버리고 단신으로 죽을 힘을 다해 밤길을 달려 도망쳤다
캄캄한 밤, 그저 불이 켜져있눈 어느 집으로 무작정 뛰어 들어갔다.
홀로 살고 있는 시몬이라는 양복장이가 벌벌 떨고 있었다.
"주인장, 나 좀 숨겨주시오. 나를 숨겨 주면 크게 후사하겠소.”
마음씨 착한 양복장이는 누군지는 몰라도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나폴레옹을 커다란 이불장 속에 숨겨주었다.
잠시 후 러시아 병사들이 들이 닥치고 집안 구석구석을 수색했다.
한 병사가 이불장의 이불더미를 창으로 쿡 찔렀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나폴레옹은 가까스로 창을 피했다.
병사는 몇 번 더 찔러보고는 다른 병사들과 함께 썰물처럼 나가버렸다.

시몬은 나폴레옹을 이불더미 밑에서 나오게 하고 따뜻한 차를 대접하였다

겨우 살아난 나폴레옹이 말했다.
"주인장, 정말 고맙네. 나는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일세.

목숨을 구해줬으니 소원을 들어주겠네. 무엇이든지 말해 보게.”

"예? 황제폐하시라고요?"
깜짝놀란 시몬이 한참 생각하다가 떨라는 목소리로 말했다.

“황송합니다. 소인의 집 지붕이 망가져서 비가 오면 물이 셉니다.”
나폴레옹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아니? 소원이 고작 그건가? 나는 대 프랑스 황제일세. 더 근사한 소원을 말해보게.”
“아, 예, 저 건너편 양복점이 또 하나 생겼는데 그 주인이 다른 곳으로 이사 가도록 좀.”

“아니 사소한 거 말고, 큰 소원을 말해봐.”
나폴레옹이 역정을 내자 양복장이는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나폴레옹은 다시 온화한 미소를 지으면서 소원을 물었다.
머뭇거리던 양복장이가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 사실 소인은 처자식도 없이 혼자 살고 있기에 별다른 소원이 없습니다.
그저 너무 궁금한 것은 조금 전 이불장 속에 계실 때 러시아 병사가 창을 찔렀는데

그때 폐하의 기분이 어땠는 지 궁금합니다.”
나폴레옹은 어이가 없어서 허허 웃었다.

그때 다행히 프랑스 병사들이 몰려들어 왔다.
"폐하..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병사들은 나폴레옹을 부축해서 말에 태웠다.
말에 오른 나폴레옹은 느닷없이 양복장이를 가리키며 명령했다.
"여보라. 저 놈은 나를 모욕했다. 내일 아침 날 밝는 대로 마을 광장에서 처형하도록 하라.”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양복장이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튿날 사형대로 끌려갔고 목에 올가미가 걸렸다. 살려달라고 아무리 외쳐도 소용 없었다.
'세상에 이럴 수 있는가?’ 양복장이는 눈을 감았다. 죽음이 눈 앞에 어른거렸다.

간수의 흰 깃발이 막 올라가려는 순간, 그때 느닷없이 한 장교가 말을 타고 달려왔다.
"형을 멈추어라!”
양복장이는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말에서 내린 장교가 뭐라고 하니까 병사들이 달려들어 양복장이를 형틀에서 풀어 내렸다.
“자, 황제 폐하께서 내리신 선물이다.”
정신이 멍해진 채로 나폴레옹이 보낸 편지를 읽었다.

"그대는 내가 이불 더미 속에 있을 때 기분을 물었지? 이제 그 답을 알려주겠네.
바로 그대가 방금 사형틀 위에 있을 때의 기분과 같았다네.
그리고 러시아 병사들이 돌아갔을 때의 기분은 지금 편지를 읽고 있는 자네의 기분과 같았다네.
어때, 이만하면 자네의 그 궁금함에 훌륭한 답이 되었을 것일세.
자루에 있는 금화로 지붕도 고치고, 양복점도 새롭게 단장하게. 내 목숨을 구해줘서 정말 고맙네.”

 

10. 나폴레옹은 키가 작았나?

흔히 키가 작은 것으로 유명한데, 당시 프랑스 사람들의 평균 신장을 고려하면 오히려 큰 편이었다. 167.6cm였던 그가 160도 안되는 난쟁이가 된 이유는 그때 프랑스에서 썼던 피에(pied)라는 단위를 영국에서 피트로 착각했기 때문. pied가 피트보다 2cm 더 길기 때문에 거의 10cm에 가까운 오차가 생긴 것이다. 거기다 황제 근위대의 구성원인 척탄병들은 원래 170cm 이상으로 키가 큰 인원들을 차출해서 만든 부대인데다가 특유의 셰코 모자 때문에 그들과 같이 있으면 나폴레옹의 키가 더욱 작아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11. 하즈펠트 대공울 용서함

제 4차 대불동맹전 당시 베를린을 점령했을 때는 나름대로 훈훈한 일화도 남겼다. 베를린 총독 하츠펠트(Hatzfeldt) 대공이 간첩 혐의에 연루되었다는 증거인 편지를 입수한 나폴레옹이 그를 체포하자, 대공의 부인이 남편은 그런 일을 할 사람이 못 된다며 총살당할 처지가 된 남편의 구명을 호소하러 왔다. 나폴레옹이 그녀의 눈 앞에 편지를 들이대자 부인은 울음을 터뜨렸고, 임신중이었던 부인의 부른 배를 보자 마음이 약해진 나폴레옹은 지금 이 편지를 곁에 있는 닌로에 던지면 아무 증거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고 그녀에게 넌지시 귀띔했다. 결국 하츠펠트 대공은 목숨을 건졌다.

 

12. 나폴레옹과 네잎 클로바

그가 전쟁터에서 정찰을 하던 도중 잎이 네개인 클로버를 발견하고 신기하여 고개를 숙였더니 총알이 그의 모자를 뚫고 지나갔다는 에피소드 덕분에 네잎클로버가 행운의 상징이 되었고, 그가 항상 전장에 나설 때도 도서관 마차를 만들어 끌고다니면서 책을 읽는 애독가였다는 사실은 뭇 책벌레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한다(그 책중에 손자병법도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다만 한 번 읽은 책은 보관하지 않고 길가에 내던져 버리는 요상한 버릇이 있었다. 이는 자신이 감명깊게 읽은 책을 지나가던 사람이 주워보고 똑같은 감동을 느끼라는 의미의 행동이었다고...


13. 이집트 피라미드에서의 하룻밤

나폴레옹이 이집트에서 대승을 거두고 이집트에서 하룻밤을 묵을 때 피라미드에 들어가 잤다고 한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에 어떻게 된 일인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무서운 듯이 피라미드에서 뛰쳐나오면서 다짜고짜 하는 말이 "앞으로 피라미드에 대해 한마디도 꺼내지 마라!"였다고 한다. 포사격 훈련한다고 스핑크스 코를 망가뜨려 놓아서 꿈자리가 사나웠나보다.

 

14. 워털루 전투와 포도주

부르고뉴의 쥬브레 샹베르땡 마을의 그랑 크루 AOP 와인은 나폴레옹이 탐닉했던 와인으로 유명한데, 상쾌하고면서도 깊이 있고 파워풀한 장기 숙성 타입의 피노 누아 레드 와인이다. 그는 " 샹베르땡 한 잔을 마시며 미래를 생각하면, 미래가 장미빛으로 다가온다." 고 말하곤 했다. 나폴레옹이 영국과의 워털루 전투(1815년)에서 패한 이유도 결전 전날 이 와인이 다 떨어져 저녁 식탁에 오르지 못해 마음의 평정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밤새 비가 와 질어진 땅에서 포병 운영이 어려워진 탓도 있지만.

.샴페인도 무척 즐겼다는 나폴레옹에게는 워털루 전투와 관련한 또 다른 일화가 있다.. 나폴레옹이 연전연승을 거둘 때 그는 항상 잔투에 앞서 병사들을 거느리고 지인이 운영하는 샴페인 하우스로 찾아가 칼로 <돔페리뇽 (Dom Perignon)> 샴페인 병의 목을 자르는 의식을 치루고 나서 출정을 하곤 했는데, 마지막 전투가 된 워털루 전투 때는 경황이 없어 그 의식을 생략했다가 처참한 패배를 당하고 몰락했다는 것이다

 

15. 세인트 헬레나에서 체스와 영어공부로 소일

-체스를 좋아했지만 실력은 거의 양민 수준이었다고 한다. 특히 오픈 게임에 약하고 상대가 조금만 시간을 끌으면 조급해했다고. 전쟁에서도 똑같았다. 단기전에선 포텐 터지고 장기전 넘어가면 끙끙... 황제가 되고나선 승률이 높아졌지만 충성체스, 유배되고나선 다시 깨지기만 한걸로 봐서 상대들이 알아서 져준 것으로 보인다. 안쓰러운 것은 세인트 헬레나 섬에 유배되었을 때 그를 탈출시키려는 추종자들이 체스판에 탈출계획을 숨겨서 보냈는데, 그걸 얘기해줘야 되는 장교가 가는 도중 죽어서 나폴레옹은 자신의 탈출계획이 숨겨진 체스판에 그런게 있는 줄도 모르고 죽었다.

유배지에서의 공책이 경매에 올랐는데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한다. 근데 못했다고…. run의 과거형은 ran인데 runned라고 우직히 한페이지 채워놨다고 한다. 또한 유배지에 있을 무렵 조선을 탐험한 영국 탐험선이 세인트헬레나 섬을 잠시 방문했을때, 영국 탐험대 대장이 나폴레옹에게 조선 여행담과 삽화를 보여줬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삽화에 담긴 조선인의 갓과 담뱃대에 꽤 인상을 받았다도 한다.

 

16. 나폴레옹의 임기응변

나폴레옹이 비쩍 말라있을 때였다. 치안장교로 하루는 거리를 순찰하는데 뚱뚱한 아주머니가 "프랑스의 피를 빨아먹는 돼지들!"이라면서 주위의 사람들을 선동하자, 나폴레옹이 다가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인, 보시오. 누가 더 살이 쪘소?"

오히려 아주머니가 말이 안나와서 웃음거리가 되었다.

화살표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