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으로 남을 것인가?

현재 수원에서 사는 한상기박사(87세)는 세계적인 육종.유전자학자로 노벨평화상을 받아도 충분한 분이었다. 그는 안정적이고 남에게 인정받는 서울대학교 농대교수를 지내다 49년전 38세나이에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로 건너가 23년을 살며  25개국 8억명의 주식인 뿌리덩쿨작물인 카사바를 계속 우수품질로 개량하여 아프리카농민의 왕으로 추대되어 살았다. 그 공로로 정식추장도 되었고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계속 오라는 초청도 사양한채 식량개발에 앞장섰고 은퇴후  자식들이 사는 미국 클리블랜드로 건너가 21년살다가 귀국했는데  아내가 치매에 걸려 10년을 정성껏 간병하다 지난달 아내와 이별을 했다. 젊은시절 본인은 아프리카에서 여권이 헤어지고 스탬프찍을 칸이 모자라 임시로 종이를 부치며 각나라의 카사바개량하러 돌아다닐때 아내는 나이지리아 연구소사택에 자식들과 남아 가슴졸이며 외로움속에서 23년을 산게 응어리가 되어 치매가 왔으리라 생각하며 자책을 했다.


상기 기사는 지난주말판 아침별지 첫면기사로 주말마다 별나게 살아온 사람들의 인생기록를 읽으며 번번히 놀라고 탄복을 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의 사연을 보면서 난 과연 무엇을 이루고 살아왔고 제대로 된 라이프싸이클을 그렸는지 잠시나마 뒤돌아보게 된다.

 

지난 월요일에는 청주현도에 있는 장인어른 산소를 개장하여 화장후 본인이 살아생전 늘 소망하던 국립묘지인 괴산호국원으로 25년만에  모시는 큰일을 치루었다. 집사람과 만나 살면서 장인모습을 15년간 지켜본 결과 그분은 늘 고생만하시다가 가신 기억뿐이라 참 회한이 많았다. 그때는 하나같이 자식들이 살기가 어려웠고 어디 좋은데 여행한번 못하시고 세상을 뜨셨다.  99세인 장모님이 살아계셔서 요양병원에 계시니  돌아가시면 좋은곳에 합장해드리게 되어 남은 자식들로서는  작은 위안을 삼으려 하고 있다. 6.25전쟁시 육군대위로 참전하여 눈을 다치셨던  장인은 집에 쌀이 떨어진 걱정보다 늘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고 계셨다. 늘 신문을 보면서 주변국정세에 제일 관심을 보이셨던 참다운 퇴역군인모습만 기억에 남는다.


이제 우리도 나이를 먹으니 주변친구들이 모이면 건강걱정을 많이들 한다. 올해로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50년이되는데 479명졸업에 공식적으로 아는 동기만 58명이 저세상으로 갔다. 남자들 평균수명은 여자들보다 대개 20년은 적은게 평소 술과 담배를 지나치게 즐겨서 생명은 단축되게 마련이다. 남자들이 70세가 되면 70%가 남고 80세가 되면 30%가 남고 90세가 되면 5%가 남는다는 말을 엊그제 친구가 친구들에게 점심을 대접하며  하는말에 기억에 남으며  수긍이 간다.


누구나 인간은 빠짐없이 생로병사과정에서  죽음을 맞는것은 피할수없는 답안지이다. 살아생전 남들이 나에게  조금이나마 기대고 싶고 위로를  받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어제보니 양재동사거리 at센타건물에는 대형현수막에 이런 글귀가 써있었다.<오늘 당신은 분명 다른사람의 위로가 되었을 겁니다>...

 날마다 그렇게만 산다면 보람있는 인생이 될것으로  여겨지기에 지금이라도 반성을 하며 노력을 해야 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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