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물을 기다리며 (시편23편이 내게 준 교훈)

   

     

다음 글은 제가 가장 어려웠던 IMF시절(2001) 전교인에게 같은 주제인 다윗의 시편 23편을 주고, 자신을 서술하라 하여 교회의 잡지에 기고한 글입니다경험하지 못한 코로나 시대와 암울한 배재사회를 보면서 지금과 비슷한  오래전 IMF 시절이 생각이 나고,   다시금 나름대로의 결기를 다지고자 오래 전 글을 올려 봅니다.




        시원한  물을  기다리며

 

 

                -시편 23편이 내게 준 교훈-

 

 

1.여호아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도다 .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1981년 여름, 신입사원이던 나는 대구의 방직공장에 실습교육을 받으러 갔다총인원은 약 1,500명 정도이고, 나는 신입사원이지만 대졸이라서 직제 상 공장에서 50명 안에 들어가는 서열이었다그래서 모자도 회색이 아니라 올리브색 이었다거의 1,500명으로부터 거수경례를(아버지뻘의 어른도 많았다.) 하루 종일 받으며 간부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저녁에는 술이 곁들여진 식사대접을 받았다.

 

그러던 중 대구의 특성인 갑자기 더워진 어느 날 (40도 현장온도) 공장안에서 여기저기 쓰러지는 여직공들을 (대부분 16~20세 산업체 학급 시골 출신 여학생) 목격하는 순간 나는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들리는 내 자신의 영혼의 소리를 들었다.  “너는 뭐하는 놈이냐? 너는 잘난 놈인가?”  나의 인생을 바꾼 이 영혼의 소리는 나로 하여금 내가 가진 지위가 나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나로 하여금 저들을 위하여 일할 기회를 부여해 준 것 뿐이라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 최선을 다하여 직장에서 그것의 실현을 위하여 일을 하다가,  돈이 목적이 아니라 내가 꿈꿔온 회사를 실험하기 위하여 1990년에 창업을 하였다.  시작부터 학력. 남녀 .지역. 등 모든 차별을 없애고 누구도 출산을 이유로 사직을 권고 받지 않았다.  오히려 3개월간 전액 유급휴가와 1년간 육아수당을 지원하였다.  초기에는 격주 휴무를 시행하다가 현재는 주5일 근무만 하고 있다현재 30명으로 가족적 소규모 회사이며 거의 모든 업무는 결재 없이 자율에 맡기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시험이 얼마나 무모하고 힘든 시험인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끝나지 않을 이 실험은 형식적으로는 완성이 되었지만 각자의 몸에는 체화되지 않았다. 노예가 자유인이 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것이 각자가 자율적인 것을 어색해 하고창의력의 원천인 개성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대부분의 직원들이 매일 반복되는 일을 극도로 지겨워하면서도 새로운 일은 항상 싫어하며 새로운 일로 자신의 시간을 뺐길까 노심초사한다.

 

문제는 나와 직원 각자에게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그러나 나의 실험의 반대조건에 있던 전의 직장은 모든 것이 통제된 회사로 새로운 아이디어는 항상 거부를 당하였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끝가지 관철시키고자 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나는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른다자율과 아이디어는 반비례하는 걸까?  나는 지독한 유혹을 받는다. 과거로 돌아가서 일부러 통제하고 억압해 보면 어떨까?

 

지난 20년간 나는 단 하루도 편하게 쉬어 본적이 없다어디에 있으나 머리 속은 업무와 현실에 꽉 차있는 것이다. 내게 있어서 가장 완벽한 휴식시간은 주일에 교회에 있는 한 시간이 거의 유일하다그나마도 빠지는 날이 많다.  IMF를 견디어내고 겪은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 그리고 직면해 있는 불황에 가슴이 뻐근하다.

 

그러나 나의 원수는 밖에 있지 아니하고,  내 마음 속에 있기 때문에 더욱더 힘들다한 번도 해보지 않은 구조조정과 인력 감축의 유혹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이것이 바로 나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이다.


 

쉬고 싶다.

불현 듯 나의 상상은 22년 전으로 돌아가 있다.

육군사관학교 연병장......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잔디에 내가 누워있다.

가장 짧고, 완벽한 휴식이다.

구름과 친구한 파아란 하늘이 보이고, 지옥 같은 럭비 경기는 끝이 났다.

신기루처럼 작은 풀벌레가 아지랑이 눈 갗을 간질이며 날아오른다.

누워 있고 싶다.

후배가 물 잔을 들고 내 눈 위에 나타나 미소 지으며,

! 일어나서 물 좀 드시지 않을라우?”

나는 간신히 일어나서 생명 같은 물 한잔을 들이킨다.

한 손에는 땀 젖은 운동화를, 한 팔은 후배의 어깨에 의지하여 맨발로 구름을 밟듯이 푸른 잔디밭을 걸어 나왔다.

 

주일에 나는 나의 초장으로 가서 편안하게 쉴 것이다그런 다음 가슴높이로 생각하고, 내 안의 원수인 유혹을 제거 할 것이다그러면 예수님 같은 직원들이 내게 시원한 물을 한잔 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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