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학당 가야 할 길 - 9.11뉴욕테러 19주년

  • 권태일(085)
  • 2020-09-11 15: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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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Going home)


뉴욕에서 플로리다 해변으로 가는 버스에 활달한 세 쌍의 젊은 남녀가 탔습니다.
승객들이 모두 타자 버스는 곧 출발했고,
세 쌍의 남녀는 여행의 기분에 취해 한참을 떠들고 웃어대다가 시간이 지나자 점차 조용해졌습니다.

그들 앞자리에 한 사내가 돌부처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무거운 침묵, 수염이 덥수룩한 표정 없는 얼굴….
젊은이들은 그 사내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누구일까? 

배를 타던 선장?
아니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퇴역 군인?

일행 중 한 여자가 용기를 내어 그에게 말을 붙였습니다.
그에게는 깊은 우수의 그림자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포도주 좀 드시겠어요?" 


"고맙소."


그는 엷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 포도주를 한 모금 마셨습니다.
그리곤 다시 무거운 침묵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침이 되었습니다.
버스는 휴게소에 섰고 어젯밤 말을 붙였던 여자가 그 사내에게 함께 식사하자고 말했습니다.
그는 수줍은 표정을 보이면서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식사를 끝내고 다시 버스에 올라탔고 젊은 여자는 그의 옆자리에 가 앉았습니다.

얼마 후 사내는 여자의 집요한 관심에 항복했다는 듯 굳게 닫혀 있던 입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천천히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빙고'였으며 지난 4년 동안 뉴욕의 교도소에서 징역살이하고 

이제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감옥에 있는 동안 아내에게 편지를 보냈소.
나는 부끄러운 죄를 짓고 오랜 시간 집에 돌아갈 수 없으니 

만약 나를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되거나 혼자 사는 것이 고생된다고 생각되거든 

나를 잊어 달라고 했소.
재혼해도 좋다고 했소.
편지를 안 해도 좋다고 했소.
그 뒤로 아내는 편지하지 않았소.
3년 반 동안이나….

석방을 앞두고 아내에게 다시 편지를 썼소.
우리가 살던 마을 어귀에 커다란 참나무 한 그루가 있소.
나는 편지에서 만일 나를 용서하고 다시 받아들일 생각이라면 

그 참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달아달라고 말했소.

만일 아내가 재혼했거나 나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면 

손수건을 달아놓지 마세요. 

그러면 나는 그냥 버스를 타고 어디로든 가버릴 거요." 라고

그의 얼굴이 그렇게 굳어져 있었던 것은 

거의 4년간이나 소식이 끊긴 아내가 자기를 받아줄 것인가?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여자는 물론이고 그녀의 일행들도 

이제 잠시 뒤에 전개될 광경에 대해 궁금해하며 가슴을 조이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른 승객들에게도 전해져 버스 안은 설렘과 긴장감으로 가득 찼습니다.
빙고는 흥분한 표정을 보이거나 창밖을 내다보거나 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굳어진 얼굴에서 깊은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치 그는 이제 곧 눈앞에 나타날 실망의 순간을 대비하며 

마음속으로 각오를 단단히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을과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20마일, 

15마일, 

10마일.


물을 끼얹은 듯 버스 안은 정적이 감돌았습니다.
자동차의 엔진 소리만이 꿈결에서처럼 아스라히 일정한 리듬으로 고막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승객들은 모두 창가로 몰려가 숨을 죽이고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버스가 마을을 향해 산모퉁이를 돌았습니다.


바로 그때


 '와~!!' 

젊은이들의 함성이 일제히 터져 나왔습니다.

버스 승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소리쳤고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얼싸 안았습니다.

참나무는 온통 노란 손수건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20개, 30개, 아니 수백 장의 노란 손수건이 물결치고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남편이 손수건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칠까 봐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참나무를 온통 노란 손수건으로 장식해 놓은 것이었습니다.

여전히 침묵을 지키는 것은 오로지 빙고 한 사람뿐, 

그는 넋 잃은 사람처럼 자리에 멍하니 앉아 

차창 밖의 참나무를 뚫어지게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이윽고 빙고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늙은 전과자는 승객들의 뜨거운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버스 앞문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갔습니다.

이 이야기는 미국 소설가이자 칼럼니스트인 피트 하밀이 

뉴욕포스트에 게재한 '고잉 홈(Going home)'이란 제목의 글입니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1973년 Tony Olando & Dawn이 만든 노래

 '오래된 참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주세요.'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가 

전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를 치면서 모두가 기억하는 감동 스토리로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노란 손수건은 용서와 포용과 사랑의 표현입니다.
남편의 부끄러운 과거를 용서해 주고 

고달픈 세월을 마다하지 않고 기다려준 아내의 지극한 사랑입니다.

I'm coming home, I've done my time.

(나 형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If you still want me.

(당신이 아직도 나를 원한다면)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

(그 오래된 참나무에 노란 리본 한 개를 달아주세요.)

1979년 이란의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면서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일하던 미국인 50여 명이 인질로 억류되었는데 

당시 인질로 붙잡힌 한 외교관의 아내가 

남편이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오길 바란다는 염원을 담아 노란 리본을 집 앞 나무에 매달았고ᆢ
이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미국 전역에 인질들을 조기 석방하여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노란 리본 캠페인이 확산되기도 했습니다.
그 뒤에도 노란 리본은 

걸프전과 이라크전 등 전쟁터로 떠난 군인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바란다는 

상징으로 사용됐습니다.

The Yellow Ribbon round the old tree.

무조건 정치적인 대립으로 뜻 없이 생각 없이 이슈화하기보다 

실제적인 노란 리본의 숭고한 뜻을 되새겨 보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
미국의 심장부를 강타한 9.11 테러사건의 피해자들이 마지막 순간에 남긴 메시지는 

사업이나 회사의 프로젝트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말은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들이 남긴 메시지는 

하나같이 가족에게 남긴 사랑의 고백이었습니다.

"여보, 난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을 다시 봤으면 좋겠어. 


부디 애들하고 행복하게 살아."

많은 사람이 일에 치여 가족도 잊은 듯 바쁘게 살아가지만, 

목숨이 1분도 채 남아 있지 않았을 때는 

결국 가족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여보, 나의 아이들아!

그렇습니다.
인생의 가장 본질적인 보람은 

일이나 성공이 아니라 

가족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들이 아무리 소중하고 가치가 있어도 

가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소설가 신달자 씨가 어느 라디오 대담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9년간의 시부모 병시중과 24년 남편 병시중했고, 

끝내 남편은 그렇게 죽었습니다.
일생 도움이 되지 않는 남편인 줄로만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창밖에 비가 와서

 '어머, 비가 오네요.'

하고 뒤돌아보니 

그 일상적인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제야 남편의 존재가 

자기에게 무엇을 해 주어서가 아니라 

그냥 존재함으로 고마운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가족보다 중요한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위 노랫말에서 죄를 지어 4년 형기를 마치고 나오는 초라한 남편을

아이들과 가정을 지키기 위하여 기꺼이 용서하고 받아주는 아내의 마음을 볼 수 있지요.



배재학당 가야 할 길


*  배재학당 선후배 동문 여러분,


오늘은 2001년 9.11 뉴욕테러 19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멀쩡하게 평화로이 자유를 누리며 생활하던 5,300명 가량의 무고한 미국인들이

알카에다로 지칭되는 이슬람극단주의자들에게 영문도 모르고 일시에 희생된 날이지요.

잔인한 테러로 희생된 그분들의 슬픈 인생을 생각해 봅니다.


분열과 갈등을 극복하고 하나되는 모교사랑은 우리 모두의 소원입니다.

우리는 누가 뭐래도 몇 십년전 앞서거니 뒤서거니 정든 서소문 정동벌에서

배재학당을 모태로 태어난 한 가족, 한 형제가 아닙니까?

무엇이 그토록 서운하며 용서 못할 죄가 있겠습니까?

이제는 모든 앙금을 털어내고 서로 손에 손 잡고 강강수월래를 부르며

우리 모교를 만세반석 위에 올려 명실공히 우리나라 제일의 명문으로 자리매김하는데

8만 동문들이 기꺼이 주춧돌이 되고, 기둥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도대체 언제까지 선배를 무시하고, 후배를 미워하며 아까운 시간을 죽여야 하겠습니까?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밑도 끝도 없는  논쟁에서 이제 그만 졸업합시다.

선후배 동문들끼리 서로 헐뜯고 미워하지 말고, 눈을 나라 안팎으로 돌려야 할 때입니다.

선후배간에 사랑과 존경의 마음으로 포용하여 하나되는 배재를 만들어 주실 것을 간절히 호소합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좋은 미래를 꿈꾸며 사로를 이끌어주고 밀어줘야 할  배재의 한 가족이 아닙니까?

정말 언제 갈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들의 남은 인생이 아깝지 않습니까?

135년전 아펜젤러 선교사님이 세우시고, 고종황제께서 배양영재(培養英材)의 큰 뜻을 펼치시려고

교명까지 자랑스러운 培材學堂 으로 하사하신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사학 출신이며,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후배라는 자부심에  먹칠하는 동문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바램으로 글을 적습니다.

118년전 목포에서 개최되는 '성서번역위원회'에 참석하고자 구마가와마루(熊川丸) 증기선을 타고 가시던 중 고군산열도 어청도 부근 해상에서 한밤중의 짙은 안개로 인하여 기소가와마루(木曾川丸) 상선과 정면 충돌, 침몰될 당시 함께 가던 일행들을 살리시려고 3등칸으로 내려가셨다가 1902년 6월 11일 밤 10시경 순직하셔서 시신도 못 찾아 절두산 외국인 묘지에 빈 무덤으로 이웃사랑을 전하고 계시는 아펜젤러 선교사님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서로 화해합시다.

서로 사랑합시다.

따뜻한 선후배로 거듭 납시다.


培材學堂85回(高等19期)

惠山   權  泰  日   拜上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 .



 9.11뉴욕테러

 

위치 : 미국 뉴욕 시

발생일: 2001년 9월 11일 (화)

오전 8:46 ? 오전 10:28 (UTC-4)

종류 : 비행기 탈취, 대량 학살, 자폭 테러

범인 : 알카에다 (오사마 빈 라덴 사주)

 

9·11 테러(September 11 attacks)는 2001년 9월 11일,

이슬람 무장 테러 단체인 알 카에다의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납치된 4기의 여객기가 미국 뉴욕의 세계 무역 센터와

워싱턴의 미국 국방부 청사인 펜타곤에 자살 충돌한 사건을 말한다.

4기 중 2기는 뉴욕의 세계 무역 센터 2개 동에 각각 충돌했으며,

1기는 워싱턴의 펜타곤에 충돌했다.

4기 중 나머지 하나인 비행기는 미국 동부의 펜실베이니아에 따로 추락하였다.

이 동시 다발적인 테러 공격으로 총 2,993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은 뉴욕 시민들과 미국 국민들은 물론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후 미국 조지 W. 부시 정부는 서아시아의 테러리스트들과의 전쟁을 공식 선포했다.

 

희생자 집계  

  • 뉴욕

    • 세계 무역 센터 (WTC) : 실종 4972명, 사망 152명
    • 아메리칸 항공 AA11편 탑승객 : 사망 92명
    • 유나이티드 항공 UA175편 탑승객 : 사망 65명
  • 워싱턴 D.C.
    • 미국 국방부 청사 : 사망 또는 실종 125명
    • 아메리칸 항공 AA77편 탑승객 :사망 64명
  • 펜실베이니아 주
    • 유나이티드 항공 UA93편 탑승객 : 사망 44명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2001년 9월 11일은 온세상을 경악케한 911테러가 일어난 날입니다.

 19년전 오늘 오전 8시 45분 (현지시간) 승객과 승무원 92명을 태운 보스톤 7시 59분발

 로스엔젤레스행 아메리칸항공사의 보잉767기가 이륙후 납치되어 뉴욕월가의 110층짜리

 세계무억센터 쌍둥이 빌딩의 북쪽건물 80층부근을 들이 받았고,

 18분뒤에는 납치된 또 다른 여객기가 WTC 쌍둥이빌딩 남쪽건물로 돌진하여 두 건물이 모두

붕괴되어 5,281 명이 그 자리에서 희생된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2,977명 공식적 사망자 중에는 韓人 희생자도 21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분들의 명복을 빌면서도 그 와중에 아랍권에 포위된 지정학적 위치관계로 무슬림의 테러 대비에 만전을 기하던 이스라엘의 첩보기관 Mossad는 낌새를 눈치채고 당일 유태인들의 출근을 자제토록하여(?) 인종별 희생자 집계에서 그 많던 유태인은 거의 없었음이 밝혀져 오히려 씁쓸한 뒷맛을 느끼게 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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